

소설가 딸이 그려낸, 세기의 철학자 펑유란의
순수하고도 집요한 열정의 생애
학문적인 생애도 드라마틱하지만 1894년에 태어난 펑유란은 청나라(1636∼1912) 말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장제스의 국민정부(1925~1949)에서 장년기를,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노년에 겪었으며, 말년에 이르러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시기도 목도한 중국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해외로 망명할 때도 그는 “철학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해야 한다”며 중국을 떠나지 않았다. 홍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자기비판을 했고 자신의 학설을 부정했다. 그러고도 부르주아를 위한 철학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펑유란의 학문은 바로 이러한 길고도 고된 생의 여로에서 황주黃酒처럼 익어간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책에서 아버지의 삶을 담담하게 회상한 펑종푸馮宗璞는 펑유란의 막내딸이다. 막내딸이긴 하지만 이미 팔십 노인인 그녀는 중국문단의 원로 중의 원로이다. 1928년에 태어나 가학의 영향으로 글쓰기의 업을 택해 소설가로 명성을 떨쳤다. 1996년에는 문집이 묶여 나올 정도로 지명도가 있는 작가이다. 1990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이미 예순이 넘었으?, 2002년 이 책을 펴낼 때는 일흔 중반의 노인이었다. 즉, 이 책은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동거동락하며 1960~70년대의 엄혹한 시기도 견뎌낸 딸 종푸가 예순이 넘어 아버지를 잃고 그 상실감을 추슬러 칠십이 넘어 저술한 ‘나의 아버지 펑유란’이다.
책은 딸이 본 아버지 펑유란이 실천한 ‘아둔함의 시대정신’에 대한 고찰, 말년의 급박했던 저술에 얽힌 추가적인 에피소드, 펑유란이 죽고 난 다음에 빈집에 도찰하는 편지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펑유란의 95년의 생애가 이토록 짧고 압축적이면서도 글 자체의 여백과 여운이 풍부한 글을 쉽게 만나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딸로서의, 작가로서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어 있다. 아직 국내에는 펑유란의 자서전인 『삼송당자서』조차 출간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이 책은 펑유란이라는 세기의 거인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창 역할을 해줄 것이다.